LXXV

테크노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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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라도 그녀를 마주치면 결정화되었다. 단숨에 그렇게 되는 경우도 드물게는 있었지만… 대개는 느린 침식 과정과 비슷한 속도로 그렇게 되었다. 그 매혹적이고도 파괴적인 여정은, 두어가지 지역 특산물로 알려져있을 뿐인 소도시에서 출발한 고즈넉한 여행이 점차 위대한 옛 왕국의 폐허로 뒤덮인 관광 지옥에 이른 뒤, 그곳에서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야 할 내적 동인을 찾게되는 전형적인 3막 구조의 여정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지난한 여정의 등장 인물은, 훗날 자신이 회고적으로 쓰게 될 자전적 에세이의 미래 독자들이 자신의 전사에 아로새겨진 지난한 굴곡, 홈, 패임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글 자체는 이런 저런 곁텍스트 없이도 그 자체로 자기만의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남몰래 고대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여행이 충분히 결정화되기 전에 종결된다는 것이다. 등장 인물들은 즐겁게 살고, 감격과 애상의 곡조로 차오르는 클라이막스를 기점으로 즐겁게 죽었(는줄 알았)는데, 사실은, 불행하게도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짧으면 이 십여년, 길면 천 오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천을 떠돌기 일쑤였다. 살짝 작아진 키와 흐릿한 상반신만으로 지상을 떠도는 동안 죽은 자들은 가장 먼저 온기를 잃어버리고, 이후 열심히 그러모았던 상징과 기호도 잃어버린다. 그들이 지녔던 한때의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것들은 이제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타락했다. 죽은 등장인물들은 불량하게 거리를 무리지어 돌아다니다가, 흙을 밟고 걸어가는 다음 등장인물의 꽁무니를 쫒아다니다가, 어스름 무렵이 되면 살아있는 이들의 뒤통수에다 대고 불평불만을 욍알거리곤 했다. 그 소리들은-층간의 부스럭거림, 복도에 울려퍼지는 낮은 욕지거리, 뭉개진 웅성거림-은 어딘가 부딪힘으로써만 발생하는 반향어(echolalia)로써만 들려온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있다. / 2019.2.19, 2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