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XI

예술인 생애 최후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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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실행 배경 및 목표

예술인이 되기 위한 허들이 낮아진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여 현재 예술인의 개체 수는 이전의 모든 예술인을 합한 것보다도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예전과 다르게 예술인이 겪는 고통의 양상 또한 세분화되어 같은 잣대로 판단하고 해결할 수가 없다. 허들이 낮아진 만큼 예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양반부터 상놈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유입되었고, 각자가 겪는 고통은 한강이 보이는 오피스텔에서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예술인의 고독을 호소하는 것과 편의점에서 단지 100원 비싸진 1500원의 데자와가 부담스러워 빈손으로 편의점을 나오는 것을 비교하는 것만큼 낙차가 크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예술인의 수가 늘어남으로 인해 가난하고 어디 기댈 곳이 없는 예술인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고 할 수 있는데(왜냐면 이전과 달리 가난한 자들도 예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인지한 재단 측에서는 특단의 조처를 내리기에 이른다. 그것은 예술인 생애 최후 지원이라는 것인데, 마지막으로 거하게 지원을 해주는 제도다. 이 지원을 받는 예술인은 더는 어떠한 공모나 지원을 신청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재단은 관리할 예술인의 수를 줄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 예술인 개인의 입장에선 어차피 밀려나며 자연인이 되기에, 그럴 바에는 한번 거하게 돈을 타내는 것이 그럭 괜찮은 선택지라 여겨지고 재단 측에서도 예술인 개체 수 감소를 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win-win 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1.2  실행 대상 및 방법

역사에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도 못하는 채로, 그러나 자신의 예술 인생이 완전한 무의미로 수렴하지도 않는 것 같다는 가설에 가까운 희망에 매달려 근근히 예술의 주변부를 맴돌며 예술을 포기하지도 못한 채로 살아가는 불행한 예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실패한 예술 인생에 존엄한 종결을 고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조력 사망(Assisted Death)** 조치를 예술인의 생애 주기에 적용한 것이다.  이 사업에 있어서 관람 행위는 인공적인 생명 연장술로 비참한 삶을 유지하는 대신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안락사를 선택하기로 결심한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는 일, 또는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을 이미 오래전에 맞이했지만 해갈되지 못한 살아서의 한을 사후적으로나마 위로하는 씻김굿***과 좀 더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소위 행정 용어로 ‘기대 효과’ 또는 ‘향후 발전 가능성'이라 불리는 것을 가늠할 수 없다. 즉 이 사업에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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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예술인은 밥도 먹지만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최후의 지원을 받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생애 최후 지원을 받고도 다시금 어슬렁 기어 나와서 예술을 이어가기도 하는데, 다시 지원을 받고 싶어서 개명을 하여 신청을 했다가 들켜서 당선된 공모가 무효처리되는 일도 왕왕 일어났다.


** 안락사가 여전히 책임 회피적 자살의 뉘앙스와 연관되는 한국에서 여전히 산 사람의 장례식을 기쁜 마음을 치르는 일이란 낯설고 당혹스럽다. 그러나 점차 인간다움이 보장되지 못하는 삶을 인위적인 연명의료로 유지하기보다는 스스로 종결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다운 자유의지의 구현이라는, 웰다잉(well-dying)에 입각한 새로운 휴머니즘이 정립되어감에 따라 산 사람의 장례식은 점차 받아들여질 만 한 것이자, 권장될만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 씻김굿이 죽은자를 위한 것인 만큼이나 산 자가 계속해서 삶을 지속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면 이 제도가 갖는 위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20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