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VI

Re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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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과거가 달랐더라면 현재 또한 달랐을 것임과 달리, 현재가 달랐더라면 과거가, 또는 미래가 달랐더라면 현재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반사실적 의존 관계는 비대칭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많은 경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만큼이나 과거는 불투명한 것으로 남아있다. 때로 우리는 사실 진위 여부를 확인할수 조차 없는 불투명하고 이상한 증언에 기대어 과거의 사태가 어떠어떠했을 것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만약 우리가 결코 사태의 진위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인할 시간이 없고, 최초의 경험이라고 여겼던 것이 다만 최종적 경험을 회고적으로 인식한 결과였을 뿐이라면, 역사의 특정 시간대에 어떤 실존 인물이 존재했고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열거하는 방식의 역사 서술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가장 그럴듯한 가설을 우선 채택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으로 앎에 이르는 길일 수 있다. (여기서 그 앎이 유덕한 절차를 따라 정당화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미래가 어떠할 것이라는, 또는 과거가 어떠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실재를 정초하긴 커녕 환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경험을 일단의 오류 가능한 토대로 간주한 후에야 설계 가능하다.. 이로써 우리는 도저히 믿을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만 믿는 체 하는 대신 문자 그대로(verbatim) 믿을 수 있게 된다. 숨겨지거나 물러난 배후의 의미 구조에 알려질 수 없는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말하는 대신, 드러난 것만이 전부라고 말함으로써 허구적 대상에 대한 전이론적 믿음을 감수하는 것이다.

가추적 믿음은 아직 사태가 어떻다 할 분별이 생기기 이전부터 사태가 어떠할 것이라는 미리 당겨진 믿음을 통해서, 사태를 미리 예고함으로써만 기능한다. 따라서 믿음이 가정에서 시작되는지, 가정이 믿음에서 시작되는지 그 시작점을 따지는는 일은, 파도의 마루와 골 중 어떤 것이 먼저 등장했는가를 따지는 일 만큼이나 어렵다. 우리가 결코 종점에 이르지 못하며, 사태로부터 숨돌릴 시간도, 사태로부터 숨을 곳도 없는 대부분의 상황 속에서, 역행 추론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역사 추적의 방법으로 주어진다.

“뒤에 오는 검증이 완결된다 한들

 그러한 순간들에 우리가 무엇을 더 했을 수 있겠는가?*  / 2021.11.30

* 윌리엄 제임스. <근본적 경험론을 위한 시론>. 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