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렇게 사시게!


최주원, 최주원 소장품전(온수공간, 2023.4.5-11) 전시 서문



둘기, 셋쥐, 먹보, 오리, 오리쥐, 흘러내리는 시간의 만두와 계란 모양 판넬에 부조된 쥐의 초상, 피자 세이버 피자, 계란 초밥, 딱딱한 빵, 푹신한 빵, 빵쥐, 다채로운 표정의 쥐들과 그중에서도 당신의 머리를 절로 조아리게 만들 단 하나의 쥐···.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주원의 다른 소장품인 나사못, 문고리, 기이한 모양의 경첩, 가벼운 것, 무거운 것, 접거나 구길 수 있는 것, 분진이 날리는 것, 분류되지 못한 볼트와 너트, 뭔가를 깎아내고 남은 스티로폼, 아무렇게나 조각난 합판과 린넨 천, 수 없이 헐리고 다시 세워진 좌대와 막 철거한 전시에서 뜯어온 박살난 가벽 더미의 옆에, 앞에, 뒤에, 밑에, 위에 놓여있었다.


가파르게 지속되는 물가 상승 및 임대료 부담에도 불구하고, 지난 십여 년간 ‘미래의 쓸모’라는 약속으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는 점 만으로도 이 작품들을 기릴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본래 최주원의 소장품은 기억의 먼지 구덩이 속으로 잊혀진 수많은 사물의 이런저런 집합을 의미하기도 했으므로, ‘도통 보일 길이 없어 단지 만들고 소장해온 사나이’의 이야기로 일축하기는 아쉬운 일이다.


혹자의 눈에 이것은 그냥 잘 못 버리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충분하지도 않다. 그 이유는 무릇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서 쓰레기가 의미하는 바란 무언갈 갖다 버려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그것이 향후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르는 다른 가능한 세계의 삶에 자꾸만 접속되어버리는 탓에, 그것이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변화하는 지속적인 과정 그 자체를 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발굴된 이 사물이 겪었을 전생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쓰레기가 되는 것은 유/무용함을 가르는 편견만큼이나 어떤 것을 작품으로, 다른 것을 쓰레기로 分別하는 마음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제 눈앞에 놓인,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물의 삶에 대한 생사여탈권은 전적으로 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마다, 가난한 미술가는 사물의 쓸모가 아닌 쓸모없음에 전율하는 몸이 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일단 사물이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 그 삶을 멈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이론이 아닌 손을 통해 배운다.


심지어 우리는 하나의 사물이 쓸모를 잃는 순간, 비로소 사물의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도 기능하는 것,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원한다! 단지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무언가 다른 것이 될 미래의 가능성을 담보 삼아 자신의 현존을 끈질기게 주장해오고 있는 사물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쌓이고 중첩된 적재된 악명 높은 각종 선반과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작은 땅뙈기이다. 시트지가 벗겨진 장식장, 녹슨 철제 캐비닛, 선반으로 기능하고 있는 익명의 구조물, 낡고 삭은 조립식 랙은 오랜 세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최선의 견고함을 증명해 왔으며, 그 대가로 그 자신의 자리를 정당하게 차지해왔다는 점은 잘 알 것이다. 일단 선반에 적재되기만 하면, 사물은 배경으로 물러나 영생에 가까운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도. 그러나 선반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사물보다는 덜 조명받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마치 한 사태의 원인으로 개인을 지목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워도, 배후의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차리는 일은 쉽지 않은 것과도 비슷하다. 이 문제는 추후 다른 기회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금번 소장품전에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존중 및 관람의 편의를 위해, 지나치게 열린 미래를 지닌 사물들- 거대한 책상, 아동용 의자, 어학용 테이프 플레이어, 고장난 라디오, 안고장난 라디오, 7080  팔도강산 클럽이 남기고 간 맥주잔과 소주잔, 녹슨 펜치와 롱노우즈, 암나사, 수나사, 새들, 역시 잘라내고 남은 아이소핑크와 야외 전시에 사용되었던 20m2의 인조잔디는 제외되었다. 이들은 향후 진행될 최주원 컬렉션 연구 사업을 통해 보다 심도있게 탐구된 후 공개될 예정이다. 



추신.

최주원 작가는 그가 단편소설이라고 주장하는 독특한 종류의 글쓰기를 통해 현실적/ 경제적/ 윤리적인 이유로 인해 도저히 작업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망상을 부단히 기록해왔다. 그 열정으로 말미암아 공히 우리 학회 쥐 학회의 편집위원으로 창립 및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워온 점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전하는 바이다. 작가의 글쓰기와 작품 활동은 여러모로 긴밀히 연결되어있으므로, 이 소장품전이 즐거웠다면, 그의 블로그 “글로 쓴 방귀(fart-writing.postype.com)"를 살펴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2023 따스한 봄의 한가운데서

학회쥐 회원 祝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