悲鳴硏究
Scream Study
2025.1 | Cassette tape, Booklet
Presented at <Blow up!>, Atelier Sungsu,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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悲鳴硏究
Scream Study
2025.1 | Cassette tape, Book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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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내지
지금 살고 있는 전세집의 작은 텃밭에는 한때 깃털이 아름다운 토종 암탉이 세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병아리를 데려와 성체로 기른 녀석들이라고 했다. 이 닭들은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울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는 ‘꼬끼오’ 하는 청아한 울음소리가 아니라, 찢어지듯이 지르는 비명소리와 비슷했다. 암탉 세 마리의 울부짖는 비명 합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듣기 괴로워졌다. 어느날 아침 또다시 예의 비명 합창이 시작되었을 때, 한 세입자가 우당탕탕 내려가 성난 목소리로 집주인에게 뭐라고 따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이후로는 닭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수탉의 경우, 안드로겐 계열의 호르몬으로 인해 숨관과 울대 주변의 근육이 더 발달하여 보다 공명감 있고 길게 뽑아내는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간단한 울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암탉 울음소리의 경우, 상대적으로 진동하는 음역이 더 높고 좁게 형성되고, 이로인해 울음소리가 더 날카롭고 찢어지는 질감을 갖는다. 이것은 닭의 울대에서 나타나는 성적 이형성(sexual dismorphims)의 하나이다. 높은 톤과 금속성의 거친 질감을 가지는 새의 울음소리를 조류학에서는 새된 울음 소리(screech)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암탉의 울음소리가 듣기에 고통스러운 이유이다.
우리는 꾀꼬리나 지빠귀의 소리는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까마귀나 갈매기의 소리는 종종 시끄럽거나 거슬리는 것, 심지어 으스스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새소리에 관한 이러한 대조적인 감각 경험은 인간의 삶 속에서 공적으로도, 그리고 사적으로도 강하게 코드화 되어있다. 전자의 새들은 노래하는 새(songbird), 즉 명금류(oscine)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울음소리에는 자주 음악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birdsong’으로 분류된다. 나는 명금류로 분류되지 않는 새들, 듣기 괴로운 울음소리를 내는 새들을 편의상 노래하지 않는 새(non-songbird), 즉 비명금류(non-oscine)라고 분류하였다. 멜로디적 요소보단 반복되는 패턴의 주기성이 두드러지는 비명금류의 울음소리는 'birdcall’로 분류되기도 한다.
토마스 모이니한(Thomas Moynihan)은『Spinal Catastrophism (척추 격변론: 비밀의 역사)』에서 철학, 심리학, 지질학, 생물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이론과 상상력을 결합한다. 그를 통해 우뚝 선 자세로 상징되는 직립 보행과 인간적 특질로 간주되는 언어의 사용이 오랜 자연사적 과정에서 발생한 재앙적 사건들의 잔재임을 주장한다. 저자는 인간의 척추를 단순한 신체적 지지체가 아니라, 인류의 진화적 비극과 역사의 단서를 담은 기록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척추적 재앙은 우주적·지질학적 파국이 인간 해부학으로 응결되어 있는 상태이자, 우리 몸 한가운데서 그 흔적과 기억이 현재 진행형으로 재현·재발작될 수 있는 상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념적 방탕과 의미적 탐욕’으로 점철된 모이니한의 글쓰기인데, 저자는 이를 ‘초계보학(hypergenealogy)’이라고 표현한다. 초계보학적 접근 속에서는 “발음학에서 유체역학, 심리학에서 화산학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각기 구별될 것이라 여겼을 대상 영역들이 얽히며 왜곡된다.”(본문의 ‘C1’ 파트 중)
위와 같은 접근은 인간의 귀에 불쾌하게 들리는 경향이 있는 비명금류의 울음소리와 비명소리 사이의 유사성에 관한, 본 연구의 토대가 된 가설을 촉진하였다. 새의 울대와 그 작동 방식에 대한 자료들은 가설의 엄밀함을 검증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일종의 음향적 음모론, 또는 소리의 트라우마적 시간성에 관한 사변을 위해 전략적으로 동원된다. 마찬가지로, 소리를 매개하는 물리적 조건들 또한 단순한 기술적 설명에 그치기를 거부한다. 소리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드는 음향적 회절, 그리고 소리의 공간감에 관여하는 잔향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옆집에서 나는 싸우고 소리지르는 정황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다. 이것은 소리 경험의 현실적인 측면이다. 반면 소리 경험의 허구적인 측면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잔향이 영원에 가깝게 지속하는 가상의 반감기를 상상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우리 주변에 우리가 들을 수 없게 된 비명소리가 가득하다는 식의 실증적 허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비명은 문화이론가 도미닉 페트먼이 “청각적 푼크툼(aural punctum)—즉, 예기치 못하게 우리의 매끄러운 가정이나 검증되지 않은 환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음향적 찌름 또는 상처”(Sonic Intimacy)라고 표현한 것에 가장 잘 어울린다. 청각적 푼크툼을 유발하는, 찌르고 상처주는 음향적 특성은 때로 우리의 귀에 감미롭게 들리는 소리와 완벽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아름다운 새소리를 모방하도록 제작된 버드콜 신디사이저의 지속시간 및 포먼트(formant) 값을 권장되지 않는 방식으로 조정하여, 비명과 비슷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나의 소리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과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은, 칼로 베듯 깔끔하게 나뉘기보다는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이행 관계 속에 있다. 심지어 동일한 소리일지라도, 듣는 귀의 형태 및 심적 지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참고 문헌]
Thomas Moynihan. (2019). Spinal Catastrophism: A Secret History. Urbanomic.
A Study on the Morphological Structure of Syrinx in Ostriches (Struthio camelus) doi: 10.1046/j.1439-0264.2003.00462.x